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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고왕-대조영
2009年09月22日 星期二 下午 01:02

고왕(高王, ? ~ 719년, 재위: 698년 ~ 719년)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인 발해(渤海)의 시조로서, 성은 (大)이고, 조영(祚榮)이다. 묘호는 태조 대조영은 대중상(大仲象, 걸걸중상)의 아들로서, 옛 고구려의 장수이다.

대조영의 출신 민족에 대해서 대한민국북조선의 역사가들은 대체로 고구려인이었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중국일본의 역사가들은 대개 속말말갈족에 가까울 것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고구려 무장                                                                                                                               

구당서에 따르면 대조영은 고구려의 별종이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남북한의 학자들은 대조영을 옛 고구려의 무장으로 보고 있다.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사망한 직후 그의 세 아들인 연남생(淵男生)과 연남건(淵男建), 연남산(淵男産)의 권력 다툼으로 국력이 많이 쇠진한 상태였는데, 결국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연남생이 당나라(唐)에 항복했다.

당나라는 667년 연남생을 앞세워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당나라는 수십 개의 고구려 성들을 함락시키고, 평양성으로 진격했다. 결국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고 고구려는 멸망하였다. 이때 대중상 부자도 당나라에 저항하다가 포로로 붙잡힌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고구려 부흥운동과 발해의 건국

고구려가 멸망한 후 옛 고구려 영토에는 당나라가 통제하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세워지고, 남아있던 고구려 세력 또한 671년 안시성 함락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 분산 정책에 따라 유민을 여러 지역으로 끌고 갔는데, 대중상 부자는 영주(榮州)로 끌려가게 되었다.

한편, 696년 영주에서는 당나라의 지나친 억압 정책에 대한 거란족(契丹)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생겨난 혼란을 틈타 대중상과 말갈의 족장 걸사비우(乞四比羽)는 영주에서의 이탈을 감행했고, 측천무후(側天武后)의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동쪽으로 이동, 당의 장수 이해고(李偕固)가 이끄는 당나라의 추격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때 걸사비우와 대중상이 죽고 대조영은 남은 고구려 유민과 속말말갈을 이끌게 되었다. 대조영은 698년 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의 추격군을 격파해 승리하고 동모산(東牟山, 지린 성 돈화 부근)에서 진국(震國)을 건국하였다. 당의 북진정책을 위협하던 돌궐(突厥)과 손을 잡아 대당 견제세력을 구축했다.

대조영은 705년 당과 화친하였고, 713년 당나라의 정식 책봉을 받아 발해군왕(渤海郡王)에 봉해져 국명을 발해(渤海)로 고치게 되었다. 719년 대조영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대무예가 발해의 2번째 왕이 되었다.

발해 초기의 국제관계

대조영과 발해국의 성립에 관해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발해 말갈의 대조영, 혹은 고구려의 별종 등으로[1]서술하고 있지만, 《신당서》(新唐書)에서는 본래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속말갈의 한 일파로 성은 대씨이며[2] 고구려와의 종족 관계를 애매하게 기록하였다. 한편 한국 기록인 《신라고기(新羅古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대조영을 고구려 장수라고 표기하였다.

당나라는 대조영의 세력을 고립시키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대조영은 돌궐족과 동맹 관계를 형성하며 고립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713년 당나라는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君王) 및 홀한주도독부도독(忽汗州都督府都督)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발해의 세력이 건국 초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발해는 신라와의 관계도 대체로 좋지 못했는데, 이는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신라의 유학자 최치원은 "발해의 왕인 대조영이 신라랑 수교를 맺고 싶어 사람을 보냈는데, 신라의 왕인 효소왕이 이를 기특하게 여겨 대조영에게 대아찬이라는 관작을 하사하였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신라와 발해는 몇 차례 교류가 있었으나 친선 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고왕의 가족 관계

부(父) 대중상

제(弟) 대야발

조카 대일하

동생의 4대손 대인수

자(子)

장남 대무예
차남 대문예

후손 대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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